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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진상규명

나에게 세월호 1,000일이란

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을 경계한다.

 

극히 작은 일부를 통해 전체를 함부로 속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를 보면 하나가 보일 뿐이고, 그 하나조차 편견 없이 제대로 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다큐 세월X는 바로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나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만큼 치열하게 공부했고,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크로스체크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왔지만, 지금의 결과물을 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매우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왔다. 나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세월호가 침몰한 진짜 원인은 "외력(外力)"이 아니면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을 절대 쉽게 얻은 것이 아니다.

 

세월X 공개 이후 많은 분들이 8시간 49분짜리 다큐가 던지는 메시지에 공감해주고 계시지만, 여러 반대 의견이 함께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 중에는 합리적인 내용도 있지만, 극히 지엽적인 문제를 꼬투리 잡아 다큐 전체를 한꺼번에 폄훼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여전히 진영논리에 갇혀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 이 때문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는 행태도 여전함을 느낀다.

 

게다가 내가 마치 국정원이나 정부의 비밀요원이나 되는 것처럼 몰고 가는 모습을 볼 때는 내가 이러려고 다큐를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나는 다큐가 공개되는 순간부터 많은 논란과 공격이 있을 것을 충분히 예상하였다.

 

정부와 군으로부터의 공격뿐만 아니라 야권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될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을 하더라도 맹목적인 반대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했다.

 

나는 그 정도의 상황도 예측 못 할 바보가 아니다.

 

여러 논란이 불 보듯 뻔했던 잠수함 충돌 가능성 부분과 파파이스의 고의침몰 가설을 검증하는 내용을 쏙 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양심을 속이는 일이었고, 스스로가 진영논리에 갇히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느꼈다.


무엇보다도 세월X의 실질적인 브레인이신 이화여대 김관묵 교수님이 파파이스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파파이스에서 닻 던지기 고의침몰론을 주장했을 때 여러 항해-선박 전문가들과 몇몇 기자들이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파파이스에 반론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하기 힘든 공격이 가해졌다.

 

솔직히 이건 거의 테러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전문가들은 질려서 침묵해버렸다.

 

하지만 김관묵 교수님은 침묵 대신 투쟁을 택했다. 거친 욕설도 마다치 않았다. 


여러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이 침묵할 때 홀로 파파이스 지지자들과 싸워나갔다.

 

세월X 공개 이후 김관묵 교수님께서 파파이스 지지자들과 격한 언쟁을 했던 부분을 캡쳐하여 교수님을 공격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나 역시도 교수님의 표현 방식이 매우 거칠고 비신사적이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한 모독적인 표현이 김관묵 교수님에게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분의 태도를 보지 않고 진심을 보았다.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보았다.

 

언젠가 김관묵 교수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정부에서 나 좀 고소해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법정에서 한번 제대로 따져봤으면 좋겠어요.”

 

나노화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께서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위험한 길을 택했을까?

 

그리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위험한 길을 택했을까?



세월호는 참 얄궂은 존재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고, 그냥 덮기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내가 성탄절인 12월 25일에 다큐를 공개한다고 날짜를 정한 것은,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위험으로부터 도망가려 하는 나 자신을 붙잡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큐를 올리기 직전까지 정말이지 피를 말리는 고뇌의 과정을 이겨내야 했음을 조용히 고백한다.

 

내가 다큐를 만들면서 매일 주문처럼 반복적으로 되뇌었던 말이 있다.

 

“별이 된 아이들만 보고 가자!”

 

나는 앞으로도 별이 된 아이들만 보고 갈 것이다.

 

그 누구의 편도 아닌 오직 진실의 편에 설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00일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내 시계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다.

 

절대 잊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절대 잊혀지지도 않을 테고, 포기하지도 못할 것이다.

 

나는 아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