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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장호권 선생님을 직접 만나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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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님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 청원서명이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속에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모금운동에 힘써주신 몇몇분들과 함께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이신 장호권 선생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8월 3일 토요일 오전... 장준하 선생님의 배우자이신 김희숙 여사님의 일원동 자택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의 왼쪽에 계신 분이 김희숙 여사님, 오른쪽이 장호권 선생님

 

김희숙 여사님께서는 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정말 어렵게 생활을 하고 계시더군요.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잘먹고 잘살고, 독립군의 후손들은 궁핍한 삶을 살고...

 

서글픈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희숙 여사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간 살아오신 이야기들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든이 훨씬 넘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말씀을 조리있게 잘하시는지 절로 감탄할수밖에 없더군요.

 

말씀 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여사님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박근혜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박근혜가 여사님을 찾아와서는 '보상'을 하겠다고 말했다는군요.

 

'사과' 이야기는 없고 '보상'만 하겠다고 말이지요.

 

즉 진심이 담긴 사죄가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미이지요.

 

여사님께서 이렇게 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뭘 보상하겠다는 건가요?

 

그리고 나한테만 보상하면 끝나는 건가요?

 

당신 아버지로 인해서 피해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두명 인가요?

 

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보상을 할 건가요?

 

그리고 당신은 아이들의 어머니의 입장이 되어 본적이 있나요?

 

나는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고, 내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어버렸는데 그 상처들은 어떻게 보상할 건가요?"

 

박근혜는 이후로 여사님에게 아무 연락도 없다고 합니다.

 

사실 여사님은 아직까지도 새벽에 자주 잠에서 깨신다고 합니다.

 

장준하 선생님을 뒤쫓는 발자국 소리와 요원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신다고 하네요.

 

그래서 잠을 푹 주무시지 못하고 늘 경직되고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시네요.

 

이 말씀을 듣고 계시던 장호권 선생님께서 농담을 툭 던지시더군요.

 

"그러길래 왜 독립군하고 결혼하셔서 그 고생이세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할텐데 너무 걱정입니다.

 

장호권 선생님께서는 향후 김희숙 선생님의 말씀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 계획이 있으시다고 하더군요.

 

↑ 마루에 걸려있는 장준하 선생님의 사진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이신 장호권 선생님은 키가 무척 크시고 풍체가 당당하시더군요.

 

거의 180cm 가까이 되어 보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정말 굵고 강단이 넘치시더군요. 

 

눈빛 또한 정말 강렬해서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이신 김희숙 여사님 앞에서는 장난도 툭툭 치시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시더군요.

 

정말 효자이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함도 있으시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처럼 장호권 선생님을 통해서 장준하 선생님의 모습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이번 모금청원서명에 대해서 거듭 고맙다고 칭찬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더군요.

 

제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이토록 큰 보람을 느낄만한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제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느껴지더군요.

 

↑ 장식장 안에 들어있는 장준하 선생님의 사진, 그리고 장준하 선생님의 안경

 

집안 장식장 안에 장준하 선생님의 사진이 모셔져 있더군요.

 

그리고..... 사진 앞에 안경이 보이시는지요?

 

장호권 선생님께서 이 안경을 보여주시겠다고 장식장을 여시려고 하는데....

 

장식장이 워낙에 낡고 오래되서 잘 열리지도 않고, 자물쇠 부분이 뚝 부러져 버리더군요...

 

아.... 또 한번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안경이 장준하 선생님께서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셨을 당시에 끼고 계셨던 안경이라고 하더군요.

 

아.... 이 안경은 그날의 진실을 보았을 터인데......

 

장준하 선생님의 죽음의 현장을 생생히 보았을 터인데......

 

언제쯤 장준하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려나요......

 

 

또 한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장준하 선생님께서 워낙에 검소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남아있는 유품 자체도 몇개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유품들 마저도 제대로 관리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 안경의 역사적인 가치.....

 

언제쯤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을까요....

 

 

김희숙 여사님께서 깜짝 선물을 주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한땀한땀 정성을 들여 뜨신 친환경 수세미를 두 개나 선물해주셨습니다.

 

이 수세미는 저에게 있어 명예로운 훈장과도 같습니다.

 

나중에 제 아이들이 커서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랑스럽게 아빠의 무용담을 들려주려 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여행을 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저는 앞으로도 장준하 선생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정신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려 합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박정희의 유신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국정원과 경찰의 대선개입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현실과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아들, 딸이 되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장준하 선생님의 손자, 손녀가 되어주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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